“서울의 밤”, 그러니까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에서의 생활이란 주제에 대해서 노동과 환경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일은 사실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무엇이다. 익숙함은 노동과 환경이라는 주제의식에서 오는 것일테고, 그 반대의 느낌은 그 논의의 대상이 주로 다루어지는 ‘낮’이 아닌 ‘밤’이라는데에 있다. 익숙치 않은 부분에 대해 하나의 가치로 예단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라 믿고, 정리를 시작해보기로 했다. 물론, 아이디어 정리이니 투박하고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도시라는 존재는 많은 것들을 흡수하며 커져간다.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이번에 다룬 주제에서는 사람과 에너지가 핵심이다. 서울에 인구가 몰려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에 발붙이고 사는 사람이라면 다들 아는 내용일테고, 에너지는 사실 좀 의외였다. 에너지 자립도가 6%에 불과한 서울은 외부에서 생산된 에너지에 단단하게 의존한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에너지는 전기란 형태로 유통된다. 화석연료의 형태로 공급되는 에너지는 연소라는 과정을 통해 (주로) 열에너지로 변환된 이후 다른 에너지로 변환되지만, 전기로 공급되는 에너지는 전기상태에서 열/빛/운동에너지로 변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는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발제하신 김현수님은 화석=>열=>전기=>열의 변환과정을 거치면서 발생하는 손실에 주목하셨지만, 사실 변환손실과 화석연료 유통에서 발생하는 추가적인 에너지 부담을 계산해봐야 정확한 평가가 가능해지는 일이다. 그리고, 그 평가와는 별개로 다른 에너지로 쉽게 변환이 가능한 전기라는 매개체는 굉장히 매력적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사용중인 에너지의 대부분 가정에서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산업 및 일반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다. 즉,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데 소모되는 에너지가 아니라, 자본이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 소모되는 에너지라는 이야기다. 김한울님이 언급하신 외국IT기업의 한국 데이터 센터 설립은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이 한국에 아시아지역을 담당할 센터를 설립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저렴한 전기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한국은 자본에게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저렴한 가격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지금의 서울을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로 만드는 가장 큰 지반이다.

자본에게 무척이나 저렴한 이 에너지가 지반이라면, 그 지반 위에 불야성을 세우는 것은 사람이다. 갈수록 늘어가는 야간/심야 노동은 그 증거인데, 이춘희님은 이 문제를 편의점과 야간버스에서 출발하여 풀어내었다. 편의점은 두말할 나위 없이 야간/심야 노동의 아이콘이고, 야간버스-다산콜센터로 대표되는 운송/행정서비스는 그 범위가 공공까지 진입했다는 증거다. 후자를 밀어붙인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비판은 잠시 접어두고, 나는 전자에 집중하기로 했다.

편의점은 상품을 매개로 ‘편리함’을 판매하는 가게다. 처음에는 신기하기만 했던 24시간 운영하는 이 시스템이 어느새 정착해 내렸다는 사실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거칠긴 하지만 사람들의 ‘밤’이 짧아졌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노동-자본간의 투쟁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노동이 자본에게서 ‘밤’을 확보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밤’은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이다.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법적 근로시간인 8시간이 늘어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짧아진 ‘밤’의 잉여는 어디로 갔을까?

그래서, 전통적인 이야기인 ‘소비’의 착취를 끄집어내보았다. 자본은 노동이 소비로부터 받아야 할 잉여를 갈취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 소비는 노동이 한다. 즉, 노동은 생산과 소비 양쪽에서 자본에게 착취를 당한다는 언젠가 주워들었던 이론이다. 이 구조를 갖다 써보면, 자본은 노동이 되찾은 ‘밤’의 시간에 ‘소비’의 시간을 끼워넣음으로 해서 자신의 몸집을 부풀릴 또 하나의 빨대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밤에 무엇인가가 소비된다면, 그 소비의 대상 재화가 있어야 한다. 이 대상 재화는 낮의 소비에서 채 소진되지 못한 잉여재화인 것은 아닐까? 이 잉여재화가 소비되어야 자본은 이윤이란 이름의 살을 얻어 몸집을 불릴 수 있다. 이를 위해 시장을 더 키울 필요가 있고, 그렇다면 ‘밤’을 빼앗아야 한다. 그렇게 빼앗긴 밤은 소비의 시간으로 탈바꿈한다. 이 논리구조에서 문제는 잉여재화가 발생하는 원인일 것인데, 크게 보면 맞벌이 부부로 대표되는 노동의 변화와 저출산률이 증명하는 인구감소를 통해 추론할 수 있는 시장의 축소가 한 축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갈수록 강화되는 노동강도와 기술의 발전으로 논해볼 수 있는 생산성의 증가를 고려해봄직하다.

야간/심야노동은 이 순환고리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 순환고리는 저렴하게 공급되는 에너지를 그 기반으로 삼아 ‘서울의 밤’을 밝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 연결관계는 적과 녹이 함께할 수 있는 지점이 되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노트20150206: 적록포럼, 서울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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