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의 제안: 의회와 조직

0. 들어가며

나는 진보신당이 좋아서 가입했다기보다는 유일한 선택으로 남았기 때문에 가입한 사람이다. 가입한 이유가 조금 우습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보정치에 대한 혹은 진보적인 삶의 고민에 대한 진정성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리라 본다. 나는 이제 32살이 된 보통의 직장인이며, 현재 진보신당 당원이고, 지금까지 진보정치를 지켜봐왔다.

이 시점에서 이런 글을 써내려가는 이유는 당에 들어와서 지켜본 모습은 당의 바깥에서 지켜본 모습과 생각보다 많이 달랐기 때문이며, 현재의 세계를 인식하는 내 주관과 당이 앞으로 나갈 모습이 많이 다를 수 있다는 판단에 내 의견을 기록으로 남겨야하기 때문이다. 이는 일종의 멈치가 될 것이다. 그리고, 당원으로 갖는 첫 발자국이 될 것이다.

이 글을 써내려가면서 수없이 풍기겠지만, 나는 얼치기 자율주의자이며, 트리보다는 네트워크를, 단일보다는 분산을, 하지만, 산만보다는 집중을 좋아한다.

1. 바깥에서 바라본 모습

애시당초 사회당 지지자였다가, 2003년에 있었던 불미스런 사건으로 인해 지지하는 정당이 없어진 이후에 있었던 분당사태가 지난 이후, 진보신당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분당이 이루어진 이후, 외부에 약속되었던 재창당의 과정을 지켜보고 당원이 되기로 결심했지만, 재창당은 촛불정국에 휘말려 이루어지지 않았고, 당은 불안해보이는 성장을 하기 시작했다.

당의 성장이 불안했던 이유는 당의 사상적 기반이 불분명해보였다는 점이 클 것이다. 외부에서 느끼는 진보/사회주의에 대한 시각은 그토록 비난해마지 않는 종북/패권주의와 다를바 없다. 그들과 다른 점을 명확하게 긋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일반인들이 지지하기에는 투쟁집단의 성격이 너무 강했다. 물론, 진보/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일련의 투쟁에 합류하고 지원하고 만들어내는 것은 너무나도 절실하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정당은 정권을 쥐는 것이 목표인 집단이다. 대의제 민주주의하에서 정권을 잡는데 필요한 대중의 지지를 얻어내기에는 진보신당은 너무나 강성한 투쟁집단처럼 보였다. 그리고, 투쟁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어보였다. 진보신당의 이름은 사회적으로 약한 부분에서 많이 보여서 좋았지만, 너무 약한 곳에서만 보였다.

대중적인 지지와 기반을 이끌어낼 아이템이었던 무상급식같은 아이템들은 진보의 탈을 쓰기 시작한 민주당에게 빼앗겼으며, 촛불로 인해 얻은 인지도는 점점 식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민주노동당과의 차이점을 부각시킬 만한 타이밍은 점점 멀어져갔다.

2010년의 지방선거는 사실 너무나 아쉬웠던 선거였다. 서울시에서 한명숙이 승리하고, 경기도에서 유시민이 패배하는 결과가 나왔다면, 더할나위 없이 진보진영에 대한 사표론을 무력화하면서 한발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겠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당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후보로서의 지위를 포기해버린 심상정씨에 대한 징계라도 신속하게 정리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할진데, 이 역시 더디고 약했다. 바깥에서 보기에는 상황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이는 당의 대중적 스타를 지켜야한다는 진부한 판단으로 비추어졌으며, 과거 3김시대의 보스정치를 떠올리게 하는 좋지 못한 선택이었다. 또한, 떨어져버린 진보신당에 대한 지지도는 사람들이 당을 “잊어”간다는 증명서였다.

그리고, 2012년 총선. 자유-민족-현실의 결합체인 통합진보당이 탄생하고, 진보신당은 패배했다. 총 선 직전의 통합진보당 탄생과 관련해 외부로 노출된 잡음은 당의 지지도를 더더욱 하락시켰으며, 민주당과 타협이 없어 보이는 총선의 진행은 현실정치 혹은 대중정치에 대한 생각이 없는 아마추어적인 모습으로 보였다.

하지만, 민족주의자들의 종북-패권주의에 대한 걱정이 없는 지지할만한 정당이 남았다.

2. 당원이 되다.

그리고, 당원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홍세화 대표의 “전태일당”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문득 레닌이 떠올랐다.

당의 외부에서 보았을때 알 수 없던 그 기운은 들어와서 잠시 지켜보건데, 노동자의 강고하고 단일하고 균질한 지지에 기반하는 강성 전위정당을 꿈꾸는 사람들의 기운이었다. 자본이 노동을 파편화하고 불균질하게 만들면서 탄생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약하고 산만하고 불균질한 노동의 현실에서 아직도 2004년의 민주노동당을 꿈꾸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2012년의 현실을 보건데 노동자를 조직화해내는 것이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인가? 아니, 현대사회의 구성원이 노동이란 말 하나로 정의되고 조직될 수 있는 단순한 그 무엇인가? 엄밀히 말해, 모든 인간은 다르다. 다르고 또 다르며, 다시 한번 다르다. 어떤 존재를 설명한다는 것은 어떤 관점에서 보건데 그 존재를 설명하기에 가장 가까운 개념을 붙인다는 것이지, 정말로 그 존재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는 임금을 받는 사람이다. 현대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노동자다. 하지만, 노동자라는 말로 모든 것이 설명가능해지는 것인가? 정말 그런 것인가?

노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조직화될 수 있는 것인가? 노동자이지만, 노동보다 다른 문제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어쩔 것인가? 현재의 노동에 만족하는 사람은 어찌해야 하는가? 자신이 속한 노동 혹은 가진 노동이 다른 가치 혹은 노동과 충돌하면 어찌되는 것인가?

노동은 자본이 착취하는 수많은 대상중 하나인, 인간을 착취하는 하나의 분야일 뿐이지 자본-노동간의 착취논리가 자본이 착취하는 다른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다. 그리고, 노동의 형태와 그 형태에 따른 착취의 방법 및 논리도 분야별로 상이한 경우가 많다. 맑스가 주장한 착취의 방정식은 각 착취를 설명하는 도구로는 훌륭하지만, 그 설명이 단일한 형태의 주제로 합리화 될 수는 없다. 자본에 대한 맑스의 공격에 대해 자본은 그 방정식을 변주하여 노동이란 주제로 통합될 수 없는 파편화된 복잡한 사회로 응답했다.

자본이 바꾸어놓은 파편화된 이 사회에서 노동을 주제로 단일하고 강고한 조직을 만드는 것은 가치의 충돌을 내포할 수 밖에 없으며, 이 충돌에 의해 균열이 발생하고 조직과 투쟁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비정규직 투쟁과정에서 드러난 정규직 노조의 태도를 통해 이를 예측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노동이 유효하고 주요한 가치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모든 주제가 노동으로 귀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동이 아닌 다른 주제를 포괄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홍세화 대표의 ‘전태일’론은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다. 전위적이고 단일하고 강고한 정당은 비합법 무력혁명을 꿈꾸는 지하서클에서나 가능할 법한 이야기다. 현실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다. 지금의 상황에서 현실적인 이야기는 파편화된 현실에서 그 파편성을 인정하고 파편성에 맞는 조직과 정당을 만드는 것이다. 노동이란 국한된 주제를 기반으로 당을 세워 제2의 민주노동당을 꿈꾸어서는 안된다. 2000년의 사정과 지금의 사정은 다르다. 12년간 자본은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내었으며, 우리는 이 환경에 맞게 적응해야 한다.

3. 꿈꾸어야할 당의 미래, 약자의 의회

정치는 기본적으로 가치들의 충돌과 그 충돌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하는 행위이며, 정당은 이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의 정치결사체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다. 무력을 통한 혁명이나, 선거를 통한 승리다. 폭력혁명을 꿈꾸는 지하서클이 아닌 이상, 당이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은 선거를 통한 승리다. 이는 레닌으로 부터 전해저 내려온 전위적 정당의 모습이 아닌, 다른 형태의 대중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당은, 아니 당을 구성하는 당원들이 쟁취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아니 무엇이어야 하는가? 당은 어떤 가치를 내세워야하고 어떤 공감대로 사람들을 모아 선거에서 승리해야 하는가? 경쟁상대인 다른 정당들과 어떤 차이점을 만들어내야 하는가?

다른 정당들을 살펴보면, 새누리당은 산업화/국가주의에 기반하고 있으며, 민주당은 민주주의/남북평화에 기반하고 있다. 그리고, 통합진보당은 노조/통일/자유주의에 기반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바라보면, 현재의 상황에서 가장 유력하고, 가장 힘을 얻을 수 있는 의제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가 아닌 사회적 약자의 정치세력화다. 다양한 분야와 맥락에서 약자로서 억압/탄압/착취당하는 사람/가치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정치결사체가 되어야한다. 당이 내세워야하는 가치는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것이다.

“약자를 대변한다”라는 가치는 추상적이다. 그리고, 약자라는 존재 역시 추상적이다. 현실에서 약자는 상대적이고, 존재의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때문에, 어떤 약자를 대변할 수 있는 의제는 문맥적이고 시한적이다. 이는 의제가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의제가 표면화 될 수 있는 구조와 그 의제를 현실화 할 수 있는 힘이 중요하다.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 힘은 대중의 지지다. 그리고, 지지를 기반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당의 힘이다. 이런 구조가 낳는 것이 약자다. 약자의 지지는 당의 목소리를 바꾸지 않는다. 때문에, 약자는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수 없으며, 약자로 남게 된다. 그리고, 강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기존의 정당들은 미디어나 지역주의에 기반해서 약자의 지지를 만들어낸다.

당이 이끌어내야 하는 지지는 약자의 지지다. 인간은 어떤 문맥에서든 약자일 수 밖에 없으며, 당은 이 부분을 파고 들어야한다. 약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약자를 대변해야하고, 약자를 대변하기 위해서는 약자인 당사자가 당에서 의견을 표명하여 의제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얻어낸 힘을 이용해 그 의제를 현실화 해야한다. 이는 구조적으로 우리가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 정당으로써 힘을 얻지 못하는 이유와 같다. 국회의원이 없다는 것은 가장 큰 정치기구인 국회에서의 발언권이 없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당의 힘은 점점 약해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약자는 자신의 목소리를 낼 정치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당은 그런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구가 되어야 한다.

즉, 당은 약자의 의회가 되어야 한다.

약자의 의회는 그 약자들의 힘을 기반으로 국회라는 의회에 진출해야 하며, 약자의 의회에서 결정된 내용에 기반해 정치투쟁을 전개하고 약자들의 이익을 쟁취해야 한다. 때문에, 약자의 의회를 구성할 수 있는 구조적 기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기구는 정파등록제에서 출발할 수 있다. 약자를 대변하는 기존의 단체들이 정파로 참여하고, 당이 기존에 추구하던 가치들은 그 가치들 별로 정파를 구성할 수 있다. 또는 새로운 의제가 발생하면, 그에 맞는 정파가 생겨날 수 도 있을 것이며, 필요 없어진다면 없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당은 이런 형태로 다양한 국면에 존재하는 다양한 약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의회의 형태를 지녀야한다. 기존의 수직적이고 단일하고 강고한 형태의 구조로는 현재의 파편화된 약자들을 수용할 수 없다.

하지만, 이는 기존의 대의제 민주주의가 갖는 소수의견의 묵살이라는 한계점에 부딪힐 수 있다. 따라서, 미국 양원제의 개념과 유사하게 정파별로 지정된 명수가 참여하는 의회와 정파별 가입당원수에 기반해 구성되는 의회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당원이 직접투표로 참여하는 의회도 존재해야 한다. 굳이 명칭을 붙이자면, 정파의회, 대의회, 평의회로 나누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각각의 약자들은 각각 다른 국면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에, 복수정파 가입 역시 허용되어야 한다. 이는, 각각의 구성원들이 가치의 충돌에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4. 당의 조직: 지역/부문과 중앙

대한민국은 기본적으로 지방자치를 실현하고 있지만, 지방자치보다는 중앙집권적인 현실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정치에서 당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 것인가? 지역정치는 중앙정치에 비해 조금 더 현실적이고, 조금 더 피부에 와닿는 이야기일 수 있다. 그리고, 각 구성원의 생활은 어쩔 수 없이 지역이란 지리적 한계와 연관관계가 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중앙정치와는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중앙정치가 가치의 충돌이라면, 지역정치는 현실의 충돌이다. 때문에, 지역정치는 중앙정치에 비해 현실적이다. 그렇기에, 당의 지역조직은 약자의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가능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구의 기능을 갖추어야 한다. 이는 각 지역에 소속된 당원들의 참여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기능은 당이 약자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모습을 당사자들에게 보여주어, 당에 참여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여성이나 환경같은 부문정치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즉, 지역조직과 부문조직은 현실의 충돌에 참여하여 가능한 약자에게 도움을 주는 기구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각 지역과 부문에서 당에 함께할 수 있는 조직 혹은 개인을 찾아서 약자의 의회를 풍성하게 하는 관문으로의 역할을 같이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중앙에는 이런 기능을 수행하는 지역/부문조직을 지원하는 기구가 필요하다. 당의 중앙조직은 가치의 충돌에서 약자의 목소리를 담보해주는 약자의 의회를 운영하고, 지역/부문에서 현실의 충돌에 참여하는 지역조직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역할은 권력을 수반할 수 있으며, 때문에 약자의 의회가 이를 견제하는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도록 권한을 명시적으로 주어야 한다. 즉, 당의 중앙조직은 철저히 행정적인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그리고, 구조적으로도 지역조직과 부문조직은 중앙조직의 하부조직이 아닌 별도의 조직으로 존재해야 한다. 중앙조직은 지원을 하는 조직이지 명령을 내리는 권력이 아니다.

물론, 당의 현실적인 상황을 보건데, 얼마 없는 당원과 현실에서 이런 구조가 가능한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지향점을 가지지 않는다면, 당의 중앙조직의 권력에 의해 당이 좌지우지되고,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한 채, 당은 외면받고 잊혀질 것이다.

5. 결론

가치의 충돌을 담당하는 약자의 의회와 현실의 충돌을 담당하는 지역기구, 그리고 이를 운영하고 지원하는 중앙기구로 구성되는 이 제안은 어찌보면,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는 국회와 현실의 충돌을 해결하지 못하고 중앙정부만 바라보는 지역자치, 자체로 권력이 되어버린 행정부를 가진 대한민국에 비교하면 국가가 가져야 하는 이상적인 모습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제안은 당이 직면한 그리고, 약자가 직면한 현 상황에서 당이 가져야 할, 그리고 지향해야 할 지점에 관한 제안이다.

자본과 권력이 파편화시킨 수많은 약자와 의제들을 끌어안고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약자들이 결집할 수 있는,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위한 정치를 고민할 수 있는 장으로 기능할 수 있는 당을 꿈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