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팩토링: Avoid return statement with value if you can.

영어로 제목을 쓰려던 것은 아니었으나, “Catch me if you can”을 의식하다보니, 이런 제목이 되었습니다. 사실 영어는 종종 의도를 드러내는데 유리하기도 하구요. 🙂

프로그래밍 언어에서 return문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프로그래밍을 수학적 모델로 표현하는데 있어서, 함수라는 개념은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함수의 출력을 받는다는 면에서 매우 중요하지요. 하지만, return문은 독입니다. 왜냐구요? 중요한데 왜 독이냐구요? 이야기를 한번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소프트웨어는 개발 기간이 길어지면, 복잡해지기 마련입니다. 처음 개발할때의 요구사항이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는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며, 늘어난 요구사항은 처음에 짜둔 아름다운 흐름을 망가뜨리기 시작합니다. 소프트웨어의 구조가 무너집니다. 코드는 점점 스파게티가 되어갈 것이고, 문제라도 생겨서 디버깅이라도 하려고 하면 지옥이 따로 없죠.

이런 코드들을 고통을 감내하며 Sequence Diagram을 그려보면, 왜 복잡한지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클래스별로 호출이 들어갔다가 나오고, 그 결과에 따라서 새로운 분기가 발생하는 사태가 벌어지죠. 그리고, 이 분기의 수가 많아지면, Sequence Diagram은 읽기 힘든 선들의 난잡한 리좀이 되어버립니다. 들뢰즈가 극찬했던 리좀이지만, 각 클래스별의 자유로운 결합과 소통이 아닌 서로를 점점 더 구속하는 꼬인 실이 되어버리죠. 그냥 이정도면 모르겠는데, 반환값이 여러개여야 하는 경우에는 return문을 쓰지 못하고, reference나 pointer를 이용한 억지스러운 반환을 하는 경우까지 발생합니다. 점점 더 복잡해져만 갑니다.

갑작스런 이야기 전환이지만, 전투기에 탑승해서 미사일을 쏜다고 생각해봅시다. 미사일은 날아가고 있고, 그 미사일이 격추 결과를 반환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제어를 해야한다면.. 네, 생각만해도 복잡합니다. 반면에, 그냥 미사일을 쏘고 뭐가 어찌되든 알아서 해결된다고 하면, 편안하죠. fire-and-forget입니다. call-site에선 신경쓰지 않는겁니다. callee쪽에서 알아서 하겠죠 뭐.

함수를 호출하는데 있어서 그 결과값에 신경써야 한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수학 연산이나, 문자열 검색같은 피할수 없는 반환값이라면 모르겠지만, 소프트웨어가 구현하는 Business Logic이라면, 그 결과값에 따른 논리구조의 분기는 피할 수 없습니다. 결과값이 존재한다는건, 그 결과값에 따라 무언가 다르게 하려고 했기 때문일테니까요. 그리고, 그 분기는 요구사항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두고두고 당신을 괴롭히겠죠.

Sequence Diagram을 생각해봅시다. return문이 없다면, 함수호출을 의미하는 화살표만 있으면 됩니다. 반환값에 따른 분기도 없을테고, 분기가 일어나는 시점은 바로 그 분기조건을 확인하는 그 순간입니다. 더욱 간단해지죠. 그래봐야 Sequence Diagram이 복잡해지는건 매한가지 아니냐?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원래 복잡한 논리구조를 표현하는데 복잡한건 당연하겠죠. 다만 그 복잡함을 따라가는데 얼마나 더 쉬운가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렇게 짜다 보면, 어떤 객체의 상태변화에 대해서 반응하는 코드를 구현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이때 사용하는 기법이 Callback이고, Callback을 사랑하는 이유죠. Callback은 대부분의 경우, 직관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배척당하곤 하는데, 간단한 소프트웨어의 경우엔 그렇습니다. 하지만,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그 진가를 발휘하곤 하죠. 특히, 복잡해지면서 유사한 상태변화가 늘어날 경우에 더더욱 심해집니다. Callback기법을 적절히 사용하고 있다면, 해당 상태변화가 감지되었을때, 그 감지에 대한 분기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지정된 Callback을 호출하기만 하면 되니까요. 이렇게 하면, 소프트웨어의 실행흐름을 Input Layer -> Business Layer -> Reaction Layer로 나누게 됩니다. 그리고, Reaction Layer를 만들때 Callback을 활용하게 되죠.

이는 객체지향 패러다임의 원칙중 하나인 Encapsulation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Encapsulation이 필요한 데이터만 노출해서 소프트웨어를 간단하게 만든다면, 이번에 제시하는 이 원칙은 대부분의 분기를 감추는 것으로 소프트웨어를 간단하게 만든다고 볼 수 있지요. 또한, Callstack을 보는 것 만으로 분기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재현가능한 버그라면 모르겠지만, 소프트웨어가 비정상종료 되면서 남긴 제한적인 Callstack정보로 디버깅을 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유리해집니다.

이게 뭔소리냐. 하실 수 있겠지만, 제목에 if you can이 붙은건 가급적이면 피하라는 이야기입니다. 반환값을 가진 return문은 결국 호출측에서의 분기를 유발하게 되고, 그 분기는 소프트웨어를 복잡하게 만들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니까요.

 

집착하고 있는 것: 흐름

몇몇 지인들은 알고있는 사실이지만, 최근 3년간 집착하고 있는 것은 ‘흐름’이다. 다분히, 들뢰즈적인데, 2004년에 처음 만나서,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사실이다. 이렇게 쓰면서도 이것이 들뢰즈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공부는 안하면서, 단초만 잡아서 공상만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므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회사에서 밥벌이로 작성하고 있는 소프트웨어가 처절할 정도로 흐름에 기반을 두고 있고, 데이터의 흐름을 어떻게 하면 잘 처리해낼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바라보는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의 모델링 사상과는 어느 정도 동 떨어져 있는 것도 사실인데다, 복잡하기 그지없는 인터페이스의 난립에 지쳐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이 ‘흐름’은 2001년에서 2003년까지 연구하던 주제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Business Process를 연구하고 있었고, BPMS와 Simulation Engine이 주요 과제였다. 이런 면에서 보면, 산업공학이란 전공을 선택한 것이 다행이라면 엄청난 다행이다. ‘흐름’은 절단 가능하고, 연결 가능한 그 무엇이다. BPMS와 Simulation Engine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그 흐름에 연결되는 다양한 지반들을 어떻게 모델링 해낼 것인가가 현 시점에서 객체지향주의자로서 갖는 유의미한 과제다.

회사의 일정과 시장에서의 위치덕분에 지금 당장은 구현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 이유로, 무언가 다른 일이 하나 필요할 듯 싶다. 가능하면, 올해 맞는 내 생일 전에 말이지. 씨익-

OOP: revisited #4

연결강도

OOP revisited: #3를 통해 패러디와 디자인 패턴, 설계사이에 어떤 관계를 설정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헌데, 패러디는 다른 각도에서 또다른 접점을 갖는다. 바로 연결강도다.

패러디는 원작을 알고있어야 그 결과물을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원작에 대해 모른다면, 아무리 잘 만든 패러디라고 해도 웃음짓기는 힘들 것이다. 예를 들어, 개그우먼 조혜련씨가 했던 ‘골룸’ 패러디를 생각해보자. 반지의 제왕을 알고 있는 사람 혹은 영화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쉽게 ‘골룸’ 패러디에서 웃음코드를 찾아낼 수 있다. 사실, ‘골룸’을 몰라도 분장 자체가 웃겨서 웃길 수 있다. 그러나, 그 효과가 과연 같을까?

골룸!
다시 등장하신 골룸사마!

만약, 영화에서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았던 메리같은 캐릭터를 패러디했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골룸만큼 널리 사람들을 웃길 수 있을까? 인지도나 임팩트 같은 개념으로도 설명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다 포괄하는 개념으로 연결강도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즉, 골룸이란 캐릭터와 반지의 제왕이란 작품사이의 연결강도는 메리같은 캐릭터보다 느슨했던 것이다. 반지의 제왕이란 작품에서 골룸을 떼어내서 변형을 가하는 것은 비중이 적은 캐릭터에 대해 같은 작업을 수행할때보다 더 쉽고, 더 효과적이다.

물론, 느슨하다는 것이 반지의 제왕이란 전체 작품에서 골룸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는 것이 아니다.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이란 캐릭터를 끄집어 내는 작업이 수월하다는 것이다. 패러디의 입장에서 보면 연결강도가 느슨하면, 쉽고 효과적이다. 그리고, 이는 소프트웨어에서도 마찬가지다.

Loose coupling

Loose coupling이란 원칙은 패러디와 접점을 갖는다. OOP revisited: #3에서는 실세계-소프트웨어 간의 패러디를 이야기했지만, 여기에선 소프트웨어 내부의 패러디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코드의 재사용성은 기존에 있던 코드를 다른 코드와 연결시키는 것으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을때 유효한 가치를 갖는다. 즉, 기존의 코드를 비틀어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역시, 패러디의 메커니즘에 영향을 받는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패러디해야하는 코드에 골룸같은 독특하고 임팩트가 강한 개성적인 코드가 있는 것과 기억나지 않는 조연같은 코드가 있는 것은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코드의 개성은 그 코드 묶음-클래스-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가, 무엇을 나타내고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이 지점에서, 프로그래머는 예술가와 차이를 갖게된다.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이 패러디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작업하지만, 프로그래머는 패러디를 예상해야 한다. 누군가가 -본인이 되었든, 후임이 되었든- 수정하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사실은 중요한 지점을 낳게 된다.

Software cannot be finished

물론, 소프트웨어는 끝나기 마련이다. 회사가 망하기도 하고, 수익이 더 이상 나지 않아서 제품을 없애기도 하고, 쓰는 사람이 없어서 자연스래 사장되기도 한다. 하지만, 개발하고 있는 순간에는 그 가능성을 잊어야한다. 소프트웨어는 지속적으로 변하는 생물과 같아서, 성장을 계속 주시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성장을 지속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나는 얼마 전까지 이 성장을 컴포넌트의 집합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그게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 깨달았다. 소프트웨어는 단순한 컴포넌트의 집합체가 아니다. 일반적인 인간사회에 더 가깝다. 각 컴포넌트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제공해야 한다. 미리 규정된 규칙에 따라 컴포넌트들이 연동하는 것이 아니라, 컴포넌트들이 자유롭게 서로를 사용하고, 서로에게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패러디를 예상한다는 것은 이런 상황을 제공한다는 것이기도 하고, 이런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억하라. 프로그래머는 결코 자신이 만드는 소프트웨어를 완성할 수 없다. 다만, 잠시 쉴 뿐이고, 요구사항을 기다리거나 찾고 있을 뿐이다. 현명한 프로그래머라면, 항상 스스로를 패러디할 준비를 해야할 것이다.

OOP: revisited #3

패러디의 작동원리

지금까지 OOP: revisited #1OOP: revisited #2를 통해 철학과 미학의 개념을 빌려와서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을 되밟아보았다. 이번에는 패러디를 빌려와서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을 되밟아보기로 한다.

다음 커뮤니케이션즈에서 제공하는 백과 서비스를 이용해 찾은 패러디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문학에서 특정 작가의 약점이나 특정 문학유파의 과도한 상투성을 강조해보이기 위해 그들의 문체나 수법을 흉내내는 일종의 풍자적 비평이나 익살스러운 조롱조의 글. via 다음백과

위의 정의는 문학에 한정지어서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일상에서 알 수 있듯이 패러디는 본연의 의미/형태를 비틀어서 웃음을 유발한다. 패러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틈의 메커니즘은 상당히 흥미로운데, 기존의 작품에 존재하는 사건의 구성요소-이하 요소-들을 반전시키기도 하고, 요소간의 연결관계를 뒤집거나 전혀 엉뚱한 곳에 연결지어 의외성을 노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비틈의 경우 비틈을 수행하는 사람이 가진 의도에 따라 정치적 혹은 색다른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

골룸!
골룸!

한국에서 유명한 패러디인 골룸을 생각해보자. 조혜련씨나 안영미씨가 즐겨하는 이 골룸 패러디는, 골룸이 가진 역사성이나 배경은 무시하고, 절대반지에 대한 탐욕과 그 외모만을 뽑아내서 자신의 분장과 연결시킨 후에, 이를 개그코너 혹은 무대와 연결짓는다. 골룸이 등장한 순간, 사람들은 코미디언이 비틀어놓은 골룸에서 웃음을 짓는다. 생략, 변형, 연결. 이 3가지가 패러디 메커니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패러디는 단순히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생략/변형/연결을 통한 재창조과정이다. 콜라주나 리메이크/커버와도 일맥상통한다. (사실 결과를 제외하고 메커니즘만 본다면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중요한 사실은, 요소와 요소사이의 관계에 변형을 가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디자인 패턴의 메커니즘

디자인 패턴은 OOP: revisited #2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관계의 모방이다. 그러나, 그 모방을 위한 메커니즘은 일반적인 모사라기 보단, 패러디의 모사에 가깝다. 현실세계의 실체를 모방하여 개념을 만들고, 그 개념사이의 연결관계도 현실세계의 연결관계를 모사하지만, 굉장한 생략과 비틈이 존재한다.

생각해보자,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Factory패턴의 경우만 해도 실제 공장에서 존재하는 노동자나 수많은 기계들, 운반을 위한 시스템 같은 것들은 전부 생략된다. 그리고, 공장의 특성인 물건을 만들어내는 공간이란 특성만을 뽑아내어 이를 객체를 만들어내는 객체로 비틀어 개념화한다. 그리고, 이를 만들어야 하는 객체와 연결시킴으로써 Factory패턴을 완성한다. 생략, 비틈, 연결의 조합이 Factory패턴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처럼 디자인 패턴은, 현실에 존재하는 관계 혹은 실체에 대해서 생략, 비틈, 연결을 수행한다. 그리고, 대상이 현실에 익숙한 관계/실체 이기 때문에 프로그래머가 인식/이해하는데 훨씬 편하다. 디자인 패턴은 제목만 이해하면 된다. 제목을 이해했고 관계/실체가 익숙한 것이라면, 이해는 그냥 따라오기 마련이다. 마치, 패러디가 웃음을 유발하는 것처럼 말이다.

패러디 메커니즘의 의미

익숙한 것을 끌어와서 변형하여 사용하면 여러모로 유익한 점이 많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해하기 쉬운 코드를 작성하기 위해, 혹은 간결한 설계를 하기 위해 패러디의 메커니즘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읽는 사람이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을 끌어온다면, 설명은 더욱 쉬워지기 마련이니 말이다.

패러디 메커니즘을 가져오자는 것이 단순히 이름을 빌려오자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생각하고, 그 이름에 걸맞는 행동을 하는 설계를 해야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실제 관계나 실체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 생략, 비틈, 연결을 수행해야 한다. 프로그래머/설계자는 기억해야한다. 자신은 결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작성하고 있는 것임을.

OOP: revisited #2

OOP: revisited #1를 통해서 이야기했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객체지향의 핵심은 ‘추상화’

문제는 이 추상화라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긴 한데, 쉬운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문제가 복잡해지기 시작하면 실제 세계를 모델링해서 나온 객체 이외에 다른 종류의 객체들이 필요해진다. 인간이 실제 세계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실제 사물들을 추상화한 개념concept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굉장히 거칠게 말하면, 개념들을 연결하는 개념이 추가적으로 필요하기 마련이다. 집합, 접속사, 거리, 대화, 연결 등등 수많은 개념들이 실제 사물에서 파생된 개념이 아닌 개념과 개념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개념들은 실제세계의 관계에 기반하기도 하지만, 재미있게도 사물의 기능에 기반하기도 한다. 연애소설에나 나올 법한 표현이지만, 사람사이의 관계를 ‘다리’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다리가 갖는 ‘연결’이라는 기능에 기반해서 의미를 포획하는 경우로 볼 수 있다.

디자인 패턴은 관계의 모방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을 실제세계의 모방mimesis이란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자연스럽게 위와 같은 의미포획이 수행되리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개념에 해당하는 객체를 만드는 것 뿐만 아니라, 그 객체들의 연결관계를 개념화하여 활용한다. 이런 류의 움직임을 가장 잘 포착할 수 있는 결과물은 ‘디자인 패턴’이다. ‘디자인 패턴’은 객체지향 소프트웨어를 작성하면서 자주 등장하는 패턴을 정리해둔 것인데, 널리 알려진 디자인 패턴들은 팩토리factory, 비지터visitor, 옵저버observer 등 실제세계에 존재하는 관계들의 ‘연결’을 모방하고 있다. 이미 디자인 패턴이란 말 자체에 객체간의 구성관계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객체지향은 모방에서 출발하며, 그 모방은 범주를 가리지 않는다.

객체지향의 핵심이라고 지칭했던 ‘추상화’를 생각해보자. 추상화과정을 거쳐 프로그래머가 얻어낸 개념, 즉 클래스는 무엇일까? 실제세계의 객체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과연 완벽한 “투사”의 결과물인가? 아니면 적당히 왜곡된 “모방”의 결과물인가? 아마, 투사의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프로그래머가 작성한 클래스는 소프트웨어 시스템에서 필요한 만큼만 특징을 추출해서 만든 “모방”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은 거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그 핵심인 ‘추상화’마저도- 모방을 실행한다. 그리고,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외부의 것을 모방할 뿐만 아니라, 그 내부의 것도 모방한다. 디자인 패턴을 활용하는 행위조차 디자인 패턴을 모방하여 자신의 코드를 작성하는 모방행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창의성이 없는 행위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주어진 상황과 기존의 해법을 연결시키는 모방자체가 창의적인 행동이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디자인 패턴을 적용해보면 알겠지만, 종종 원래 패턴의 의미를 왜곡시켜 적용해야할 경우도 많다. 모방은 투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방들이 모여 결국은 소프트웨어란 이름의 세상을 만든다.

모방의 의미와 프로그래밍의 재미

이 글을 읽으시면서, 아마 눈치채신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핵심 개념인 모방은 미학에서 빌려온 개념이다. 그리고, 미학은 예술을 다룬다. 모방은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 관점을 따라간다면,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은 일종의 예술로 읽힐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속성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에는 감정을 찾아볼 수 없다. 단지, 프로그래머의 이성적인 논리만 코드사이를 질주할 뿐이다. 따라서,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힘들지 않을까 싶다.

미학에서 빌려온 모방이 의미를 갖는 곳은 예술과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의 접점이다. 이 접점은 철학과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의 접점과 연결되면서, 화학적 결합을 낳는다.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은 예술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지만, 그 둘과 닮아있다. 이 오묘한 결합이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이 재미있는 이유가 아닐까싶다.

예술가가 세상을 느끼고, 철학자가 세상을 판단한다면, 프로그래머는 세상을 만든다.

.. 이후는 패러디와 함께 다음 기회에 ..

OOP: revisited #1

프로그래밍이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당황스러운 일이지만, 답은 매우 간단하다.

소프트웨어를 작성하는 것.

그렇다면, 소프트웨어를 작성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내가 내린 답은 다음과 같다.

실세계에 존재하는 시스템을 모방하여 이를 컴퓨터 시스템위에서 구동시키는 일련의 과정

다시 한번! 그렇다면, 소프트웨어란 무엇일까?

소프트웨어는 당연히 하드웨어의 작동방식일테지만, 소프트웨어를 어떤 식으로 해부하느냐 혹은 바라보느냐(즉, 어떻게 모방하느냐)에 따라 그 패러다임은 심하게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그 패러다임은 소프트웨어의 설계 및 구현은 설계에서 유지보수까지 소프트웨어 생명주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곤 한다.

패러다임을 이해하기 위해 그림 명화 두장을 준비했다. 왠 뜬금없는 미술이야기냐 라고 불평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모방mimesis을 가장 극명하게 표현해내는 예술이 미술이므로 가져온 것이다. 일단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해보자.

Las Meninas by Velazquez
Las Meninas by Velazquez

왼쪽의 그림은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Rodríguez의 “시녀들”이라는 작품이다. 이 그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위키백과를 통해서 확인하실수 있다.

1656년에 완성된 작품으로, 이 시기의 미술화풍을 잘 반영이라도 하듯 섬세한 표현이 두드러진다. 이 작품 내부에는 해석할만한 텍스트가 넘쳐나는 재미있는 작품이지만, 우리가 지금 이 작품에서 읽어야 할 것은 “텍스트”가 아니라 화풍이므로 자세한 것은 잊고 넘어가자.

Las Meninas - Picasso
Las Meninas - Picasso

오른쪽의 작품은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의 “시녀들”이다. 1957년에 그린 연작중 하나를 가져왔다. 흥미로운 점은 위의 “시녀들”을 파블로 피카소가 재해석해서 그린 그림이라는 점이다. 벨라스케스의 그림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비록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보고 그린 그림이지만, 같은 이미지를 두고 두 사람의 해석이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사실, 같은 물건을 보고 그린 두 화가의 그림(사조도 다른!)을 비교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이 두 그림을 가지고도 충분히 모방에 있어서 사람의 생각 혹은 패러다임이 얼마나 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미술에서 나타나는 이 차이는 소프트웨어의 세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미술의 사조가 화가가 받아들인 이미지를 어떤 식으로 그려내는가에 중점이 있다면, 프로그래밍의 패러다임은 프로그래머가 소프트웨어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와 그 구성방식을 무엇으로 생각하느냐에 중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미술에 인상파, 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입체파, 추상파, 다다이즘등의 수많은 사조가 있다면, 프로그래밍에는 순차적 프로그래밍Procedual Programming, 객체지향 프로그래밍Object-Oriented Programming, 함수 프로그래밍Functional Programming, 관점지향 프로그래밍Aspect-Oriented Programming등이 존재한다.

순차적 프로그래밍은 소프트웨어를 일종의 시방서로 보는 패러다임으로 인간에 대한 배려보다는 컴퓨터라는 하드웨어를 어떻게 작동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반적인) C언어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OS커널에서 제공하는 시스템 콜들이 이 패러다임을 따르고 있다. OS커널에서 제공하는 시스템 콜들을 기준으로 생각해본다면, 시스템 전체를 어찌 구성할 것인가 보다는, 하드웨어/커널이 가진 기능의 리스트에 가깝다. 또한, 하드웨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목록으로 작성하고, 그 목록에 있는 일들을 어떤 순서로 실행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함수 프로그래밍은 (수학적인) 함수들의 연결관계로 소프트웨어를 작성하는 방법론이다. 굉장히 유연하고, 직관적인 프로그래밍 방식이지만 인간이 기본적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으며, 특수한 분야에서만 주로 사용되는 결과를 낳았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관심이 가는 분야이며, 함수 프로그래밍분야에서 등장한 functor(함수자)의 개념은 C++에 도입되어 tr1::function과 같은 템플릿을 낳기도 하였으며, LISP나 scheme등의 언어적 기능들은 다른 객체지향 언어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주제인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이 있다.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은 소프트웨어를 상태와 행동으로 정의되는 객체들의 상호연동을 이용해 소프트웨어를 표현한다.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이 널리 사용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생각의 방식이 인간의 기본적인 사고방식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유사성의 핵심은 추상화abstraction에 있다.

철학의 주제 중 하나인 인식론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는 추상화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세상의 모든 사물은 다르다. 서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2. 그럼에도 인간은 사물을 구분짓는다. (Classification)
  3. 즉, 인간은 각 사물이 존재하는 공통된 성분을 추출하여 이를 토대로 세상을 인식한다.

이렇게 정리해놓으면 알쏭달쏭하지만, 쉽게보면 다음과 같다.

네모 두개

위의 그림을 놓고 “저 둘은 뭐죠?”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보통 “네모 두개” 혹은 “직사각형 두개”라는 답변이 나올 것이다. 크기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지만, 자연스럽게 두 도형의 공통된 특징을 추출하여 개념화하는 것이다. 이 과정이 인식론적 추상화의 시작점이다. 인식론 혹은 일반철학에서 이런 추상화의 결과로 나온 것을 흔히 개념concept이라고 부른다. 실제 사물이 인식되어 인간의 사고속에 담겨지는 그 “무언가”를 개념이라고 호칭한다. 물론, 이 개념은 실제 사물과 연결되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지만 이 글에서 논하는 것은 범주를 넘어서므로 딱히 논하지는 않겠다.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은 이 추상화의 과정을 거쳐 생성된 개념들을 코드로 옮긴다. 이때 작성된 코드가 객체의 설계도라고 볼 수 있는 클래스class인지, 아니면 객체의 첫 상태라고 볼 수 있는 프로토타입prototype인지에 따라 세부적인 형태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어쨌든 개념을 코드로 옮긴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다시 살짝 인식론으로 돌아가서 본다면, 인간이 하는 일이 사물을 통해 개념을 만들어내는 추상화의 작업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알고 있는 개념을 이용해 그에 부합하는 사물을 만들어내거나 모사하는 구체화의 작업도 존재한다.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에서는 이 과정이 코드 실행단계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코드로 옮겨진 개념들이 컴퓨터라는 기계를 통해 실행되면서, 실제로 객체가 생성되고 상호작용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상호작용을 통해 프로그래머의 의도를 표현하게 된다.

물론, 인간이 추상화를 어떤 방식으로 수행하는지와 그 결과물인 개념이 어떤 구성요소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관해서는 이견이 많을 수 있겠지만,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에서는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다. 객체는 상태와 행위로 구성된다. 따라서, 그 객체를 개념화한 클래스 혹은 프로토타입 역시 상태와 행위로 구성된다. 이론적으로 본다면,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패러다임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추상화에 의해 생성된 개념을 코드라는 형태로 써내려가기만 하면 손쉽고 자연스러운 소프트웨어 작성을 도모할 수 있다.

이론은 어디까지나 이론이다. 인간이 생각해낸 개념을 상태와 행위로 구성되는 개념만으로 표현이 힘든 것도 있거니와, A라는 프로그래머가 만든 개념이 불필요하게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형태일 수도 있고, 또는 지나치게 단순하거나 한 개념에 너무 많은 것을 뭉뚱 그려놓은 (흔히 말하는 -스파게티-) 형태일 수도 있다. 이런 이론과 현실의 갭이 프로그래머의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가 될 수 도 있겠지만,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의 단점으로 바라볼 수 도 있다.

이 갭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마도 논리적-철학적 사고방식의 습관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소프트웨어 개발자/프로그래머에게 가장 필요한 지식은 수학이라기 보다는 철학일 수 도 있을 것이다.

.. 이후는 다음 기회에 (우왕 길다)

ps. 꼴랑 이거 쓰는데 한달 걸렸어요. 쳇.
ps2. 레이아웃 깨지는 문제로 다시 엽니다. 🙂